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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19. <부정공>만주공휘달현묘표(晚洲公諱達鉉墓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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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정공>회운처사휘용현묘갈명(晦雲處士諱容鉉墓碣銘)
晦雲處士諱容鉉墓碣銘 族弟淵家訪余于天德山下拭淚而告曰先祖之棄不肖輩既是十數年而尚闕顯刻遺言緒論之可傳者幾乎泯泯不仁不明之罪無所可逃欲將礱珉以圖不朽而念昔先考平日甚愛者莫如兄故願垂一言而發揮也余不能辭只据平日陪從之時所覩聞者而略叙其梗槩公諱容鉉字國明號晦運惟我玉川趙氏系出高麗檢校大將軍諱璋爲肇祖三傳而諱元吉號農隱封玉川府院君諡忠獻公享武曲祠生諱瑜官副正號虔谷麗亡入杜門洞守罔僕義享謙川祠再傳而諱智崙蔭察訪築相好亭四昆季寝處是同有椿津樂之風三傳而諱大成勵節校尉 贈戶曹佐郎學者稱梅窓先生享曲水武曲兩祠至諱時一號遵晦進士當丙子虜亂倡義旅曾祖諱禮淳祖諱在益考諱昌錫妣海州吳氏永眞女 哲宗己未四月十二日生公儀容端粹聲音清亮自幼云爲然諾出於曹偶稍長涉獵經傳微辭奥旨靡不融釋性度慈惠憂人之憂樂人之樂雅好賓客旨酒美希風致藹然每當先忌奠需之割觴豆之洗滌躬親涖之僾肅之誠慤著之容必致如在家少輩或留意於噄着之芬華則輒嚴辭責之因以孝友耕讀之事諄諄提誨焉甲申八月十二日卒墓江村右麓枕丁原配濟州梁氏參軍斗煥女墓芝洞村後 坐繼配慶州鄭在奎女墓古水洞鳴哇谷負乾原子淵穆出后伯父淵宇淵宙淵家淵宅淵守孫曰東琳東夏淵宇出東圭淵宙出東璡東杓淵家出東璿東殷淵宅出東鎬淵守出銘曰 志氣清凉詩禮是篤憂人樂人普施厥德待人以恕推於宗族户履日盈談笑款洽夫日齋沐致愛致慤巍巍其行可警來百我撮平生納銘幽宅後欲考公盍觀斯刻 玉川 趙敏植 회운처사휘용현묘갈명(晦雲處士諱容鉉墓碣銘) 집안 동생 연가(淵家)가 천덕산(天德山) 아래로 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선고께서 불초한 저희를 버리고 돌아가신지 이미 십수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비석을 세우지 못하여 그분의 유언(遺言)이나 행의 가운데서 전할 만한 것이 거의 없어져 저희들의 어질지 못하고 불민한 죄는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비석을 세우고자 하는데 생각컨데 선고(先考)께서 평소 사랑한 분으로는 형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원하건데 한 말씀 써서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사양하지 못하고 평소 따라다니면서 보고 듣는 것만을 가지고 대략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공의 휘는 용현(容鉉), 자(字)는 국명(國明), 호는 회운(晦運)이다. 우리 옥천 조씨는 고려 검교대장군 휘 장(璋)을 시조로 하는데 三대를 내려와 휘 원길(元吉)은 호가 농은(農隱)으로 옥천부원군에 봉해졌으며 시호(諡號)는 충헌공(忠獻公)이며 무곡사(武曲祠)에서 향사(享祀)한다. 이분이 휘 유(瑜)를 낳았는데 벼슬은 부정(副正), 호는 건곡(虔谷)으로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는데 겸천사(謙川祠)에서 향사한다. 다시 내려와 휘 지륜(智崙)은 음보(蔭補)로 찰방(察訪)을 지냈으며 상호정(相好亭)을 지어 네 형제가 함께 거처하면서 화기애애한 즐거움이 있었다. 三대를 내려와 휘 대성(大成)은 여절교위(勵節校尉)로 호조좌랑(戶曹佐郎)에 추증되었는데 학자들이 매창선생(梅窓先生)이라고 불렀으며 곡수사(曲水祠)와 무곡사(武曲祠)에서 제향한다. 휘 시일(時一)은 호가 준희(遵晦)인데 진사(進士)로 병자호란(丙子虜亂)을 당하여 의병(義兵)을 일으켰으며, 증조의 휘는 예순(禮淳)이요, 조의 휘는 재익(在益), 고의 휘는 창석(昌錫)이며, 비(妣)는 해주 오씨(海州吳氏) 영진(永眞)의 따님인데 철종(哲宗) 기미년(己未) 四월 十二일에 공을 낳았다. 공은 용모가 단정하고 음성이 맑았는데 어려서부터 언어가 白直하고 唯諾이 명쾌하여 무리에 뛰어났다. 조금 자라서는 경전(經傳)을 연구하여 작은 말의 뜻이나 깊은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또 성품이 자애로와 남의 근심을 자기의 근심으로 여기고 남의 즐거움을 자기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평소 손님 오는 것을 좋아하며 좋은 술과 안주로 대접하여 풍류가 애연하였다. 매양 조상의 제삿날이 돌아오면 제수를 나누어 진설하고 제기를 몸소 닦아 친히 하고 엄숙한 기운이 용모에 나타나 마치 그 선조가 집에 계시는 것처럼 하였다. 혹 아이들이 음식 때문에 떠들면 엄한 말로 꾸짖었다. 또 인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일, 농사일, 공부하는 일을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갑신년(甲申年) 八월 十二일 졸하였는데 묘는 강촌(江村) 오른쪽 기슭 정좌(丁坐) 언덕이다. 배(配) 제주 양씨(濟州梁氏)는 참군(參軍) 두환(斗煥)의 따님인데 묘는 지동(芝洞) 마을 뒷산 좌이다. 계배(繼配) 경주 정씨(慶州鄭氏)는 재규(在奎)의 따님으로 묘는 고수동(古水洞) 명와곡(嗚哇谷) 건좌(乾坐)이다. 아들 연목(淵穆)은 백부에게 양자가고, 연우(淵宇)·연주(淵宙)·연가(淵家)·연택(淵宅)·연수(淵守)이며, 손자 동림(東琳)·동하(東夏)는 연우의 소생이며, 동규(東圭)는 연주 소생이며 동진(東璡)·동표(東杓)는 연가의 소생이며, 동선(東璿)·동은(東殷)은 연탁의 소생이며, 동호(東鎬)는 연수의 소생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맑은 뜻 높은 기상 志氣清凉 시와 예에 돈독했네。 詩禮是篤 남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여 憂人樂人 그의 덕 넓게 폈네。 普施厥德 남을 너그럽게 대하고 待人以恕 종족에게도 그러했네 推於宗族 집안에 손님 가득해 户履日盈 웃음소리 넘쳤고 談笑款洽 제사 날 목욕재계하여 夫日齋沐 정성과 사람 다했네。 致愛致慤 높고 높은 공의 행실 巍巍其行 백세까지 경계되리 可警來百 내가 공의 평생 간추려서 我撮平生 무덤에 명 새기니 納銘幽宅 뒤에 공을 알고자 하거든 後欲考公 이 비석 살펴 보소。 盍觀斯刻 옥천 조민식(趙敏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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